






그것은 둥지로 가져온 말라비틀어진 인간 아이를 검은 부리로 툭툭 건들이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배는 그다지 고프지 않다. 아이가 밤공기에 몸을 웅크렸다. 지금 먹이는 필요하지 않다. 뼈가 앙상한 아이는 신음소리 같은 잠꼬대를 했다. 당장 먹고 싶지는 않다. 도르륵 아이의 마른 몸을 비틀어 짜낸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늑대머리 같은 큰 머리를 갸웃하고 기울이던 그것은 커다란 푸른 날개를 펼쳐 아이를 덮어주곤 조심스레 노란 꼬리를 말고 엎드렸다. 배고픔에 지쳐 잠든 아이의 숨소리가 새근새근, 아이를 감싼 거대한 그것의 붉은 몸도 아이의 숨소리를 따라 긴 호흡을 시작했다. 밤공기에 웅크리고 있던 아이의 몸은 거대한 그것의 날갯깃과 체온에 서서히 온기를 찾아갔다. 아이와 그것은 그렇게 만났다.
비단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생명들은 다른 생명을 이용하며 살고 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만족을 위한 이용부터, 눈에 보이지 않기에 지극히 개인적이고 남이 잘 알아차릴 수도 없는 정신적 만족을 위한 이용까지 이용의 범위는 다양하다. 다만 이용을 하는 자가 이용을 한다는 자각과 의도를 갖고 이용하지 않고 이용을 당하는 자 또한 이용당하면서 이용을 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 관계를 서로 이용해먹는 관계라고 표현하지 않는 것뿐이다. 이용이라는 단어에는 어딘지 소모품을 사용할 때의 냉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냉정함이 스며들어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통 이런 관계는 그 본질성을 감추고 희생이나 배려, 존중 나아가 사랑 등으로 표현되고는 한다. 어찌되었든 이러한 포장이 인간이 만든 사회를 굴러가게 한다는 점은 틀림이 없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포장일 뿐이기에, 이용해서 얻는 가치가 떨어진다면 누구든 그 전까지 ‘소중하게’라고 표현되곤 하는, 잘 이용해오던 그 대상을 가차없이 버리고 만다. 그렇지 않다고, 사람은 그런 자기만 아는 존재가 아니라고 반발하고 싶은 기분이 드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되묻겠다. 그건 아직 당신이 가진 그 대상에 이용할만한 가치가 남아있기 때문은 아닌가. 결국 옆에 두고 얻는 만족이 사라지면 갖고 있을 이유도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리 간절하게 바라고 바라며 좋은 무늬와 색의 끈을 찾아 내려 받은 아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바랐던 아이는, 아이의 웃음과 칭얼거림과 작은 손바닥, 따스한 체온은, 당장의 허기와 갈증과 그것들이 가져오는 정신적 피폐를 채워주지는 못했다. 보통이라면 자신의 이름도 부모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의 어린 나이에 아이는 버려졌다.
보통이라면 자신의 이름도 부모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할 어린 나이였다. ‘보통이라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특별했다. 자신을 버린 부모의 얼굴, 같은 리에 살던 사람들, 한밤 중의 고요한 소란, 들어올려지던 그 팔의 체온까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것만이라면 어린 아이에게는 충격적이라 기억에 남을 만하다 하겠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이는 정말 모든 것을 잊지 않았다. 어렸을 때 들었던 자장가, 따스하게 안아 올려주던 어머니의 온기, 이름을 불러주던 아버지의 목소리, 의식이 있는 순간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이 아이에겐 있었다. 그것을 아이가 능력이라고 생각하는지 저주라고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어도.
아침에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달은 아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인가를 찾아 물어물어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이었다. 물론 떠오른 만큼 빠르게 지워버렸다. 가족이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아이는 알고 있었다. 다시 찾아갈 수는 없다. 그보다는 자신을 보듬어주는 이 알 수 없는 것의 온기에 지친 몸이 이끌렸다. 아이는 그것이 자신을 먹을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그것과 함께 있기로 결정했다.
아이는 언제부터인가 그것의 말도 깨우치고 대화하곤 했다. 그것은 아이를 작은 것이라고 불렀고 아이는 그것을 커다란 것이라고 불렀다. 커다란 것은 아이는 먹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인간을 먹이로 삼고 있었다. 산길에 숨어있다가 지나가는사람을 덮치거나 여의치 않을 때는 인가를 습격하기도 했다. 아이는 커다란 것의 등에 타고 함께 먹이를 구하러 갔다가 돌이나, 화살을 맞고 다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등에서 내려 사람에게 다가가지는 않았다. 아이는 사람을 먹지는 않았다. 한동안 커다란 것이 사람이 먹는 것을 말려보려고 시도하기도 했지만 커다란 것은 들어주지 않았다. 아이는 커다란 것의 살인을 묵인했다. 그것이 커다란 것과 공존하는 법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을까 그날은 사냥이 아니라 기분전환 겸 비행을 하러 나선 날이었다. 보통하늘에서는 새나, 커다란 것과 비슷한 것과 만나기는 해도 사람은 전혀 보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자신과 같은 사람과 마주쳤다. 사실 너무 빠른 속도로 지나친 것이라 아이의 시력으로는 쫓을 수도 없었지만, 마주친 상대편 쪽에서 아이를 쫓아 돌아온 것이다.
“여어.”
분노나 공포에 찬 고함소리나 비명소리가 아닌,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타인의 목소리에 아이는 순간 주저했다. 그러자 아이가 겁먹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상대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힘겹게 웃어보였다.
“넌 누구냐? 하늘에서 사람이랑 만난 건 처음이라 말이다.”
“나도….”
상대는 아이의 이어질지 모르는 말을 기다리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난 어디서 점심이라도 먹을 생각이었는데, 어떠냐? 같이 먹을래?”
‘같이’ 그 단어가 아이의 마음을 움직였다.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 먼저 아래쪽 해안가로 내려가기 시작한 상대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그 한 번의 만남으로 친구가 되었다. 그 만남이 18년 후의 재회로 이어져 반란에 어떤 촉매로 작용할지는 꿈에도 모른 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