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간신히 풀려났을 때 어머니는 집에 없었다. 온 마을을 하루 종일 찾았으나 누구도 답해주지 않았다. 리스는, 제노사이드 때 앞장섰던 귀족을 따르며 더러운 일을 도맡았던 당여들이 버려지고 축출되어 유배된 마을. 마을에 제국군을 끌어들인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흘이나 지나서야 어머니는 돌아왔다. 본래도 험한 일 모르고 자란 귀족 여식이었다. 앞으로 더 일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하나뿐인 아들은 불구였다. 빛나는 재능이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데릭은 다시 산에 올랐다. 도망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멀리도 갈 수 없이 다시 그 곳으로. 다시, 다시. 은신처로 돌아가면 영원히 열 두살인 소녀가 있다. 이제 머리 두 개는 더 커진 소년을 안고 소녀는 노래했다. 처음 들어보는, 세상에서 가장 구슬프고 아름다운 음색이었다. 선율이 맺어지기 전, 데릭은 별이 내려온다고 생각했다.

  눈 송이었다.

 

 

 

 

 

 

 

 

 

 

 

 

 

 

 

 

 

 

 

 

 

 

 

 

 

 

 

 

 

 

 

 

노르의 머리카락만큼이나 새하얀. 발치의 별꽃들도 얼어붙었다. 얼어붙은 여름 꽃 사이에서 소년 소녀의 입김이 피어올랐다. 귀뚜라미조차 침묵했다. 멈춘 시간이 다시 흐르는 듯, 오 년 전에 아문 다리가 쑤셔왔다. 

 

 

 

 


  너야. 너였어. 내 삶의 보물. 절벽을 얼어붙인 게 너였어. 그러나 말할 수 없었다. 데릭은 입을 봉했다. 저주스러웠다. 노르가. 그럼에도 소녀를 사랑하는 것을 그만 둘 수 없는 자신이. 그 절벽의 얼음이, 부러진 다리가 야속해. 채 꽃피지 못하고 시들어간 내 어머니가 가엾어. 짐 밖에 되지 않는 스스로가 치욕스럽고 죄스러워. 산 속에는 보석이 있어. 꽃무리 같은 가족. 내 삶은 덫에 빠트려놓고, 아름답고 행복한 그들이 미워.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마음은 없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