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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걷히고 달이 떴다. 보름밤이었다. 달이 그렇게 밝은 줄 처음 알았다.
노인처럼 흰 머리를 한 소녀가 거기 있었다. 사방은 온통 절벽 뿐. 딛고 내려올 수 있는 곳이 보이지 않아, 소년은 소녀가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 때 소녀가 절벽 위를 향해 누군가를 불렀고, 이윽고 나무 덩쿨 하나가 내려오더니 그것을 잡고 한 사내가 내려왔다. 소녀의 호칭으로 보아 아버지라는 모양이었지만 소년의 기준에서는 지나치게 젊었다. 그들은 어쩐지 허둥거리더니, 서로 쑥덕대고는 서툰 솜씨로 응급처치를 해 주었다. 그 서툰 손길들이 어찌나 아팠던지 소년은 하마터면 기절할 뻔 했다.
그 상태로 옮길 수는 없었기에 그들은 불을 피우고 소년의 곁을 지켰다. 빛 속에서 드디어 두 사람의 얼굴이 드러났다. 아름다운 부녀였다. 마을에서는 본 적이 없는 얼굴들이라, 요정일까 생각했다. 부러진 다리 탓에 열이 올라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정신이 들었을 때 소년은 이미 집에 돌아와 있었다. 어머니가 소년의 실종을 알려 마을 자경단 청년들이 이른 새벽 수색에 나섰다는 모양이었다. 간밤의 일이 모두 꿈처럼 느껴졌으나, 다리에 남은 서툰 부목이 눈에 밟혔다. 비현실적인 흰 머리카락이 잊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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